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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민시 모음

나무 한 권의 낭독 고영민 바람은 침을 발라 나무의 낱장을 한 장 한 장 넘기고 있다 언제쯤 나도 저러한 속독을 배울 수 있을까 한 나무의 배경으로 흔들리는 서녘이 한 권의 감동으로 오래도록 붉다 얼마나 읽고 또 읽었으면 저렇게 너덜너덜 떨어져 나갈까 이 발밑의 낱장은 도대체 몇 페이지였던가 바람은 한 권의 책을 이제 눈감고도 외울 지경이다 또 章장들이 우수수, 뜯겨져나간다 숨진 자의 영혼이 자신의 몸을 물끄러미 바라보듯 바람은 제 속으로 떨어지는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손바닥으로 받아들고 들여다보고 있다 낱장은 손때 묻은 바람 속을 날다가 끝내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밟힌다 철심같이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인적 드문 언덕에 구부정히 서서 제본된 푸른 페이지를 모두 버리고 언 바람의 입으로 나무 한 권을..

카테고리 없음 2024.01.18

좋은사람에게만 좋은사람이면 돼

Today Saying - 좋은 사람에게만 좋은 사람이면 돼 01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은가? 내가 누군가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욕심 때문이 아닐까. 나에게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 맑고 밝은 내가 되면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02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돼. 나는 나로써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니까. 03 좋은 사람에게만 좋은 사람이면 돼. - 작가 김재식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일 순 없어. 지금은 나를 돌아보는 시간, 내 마음대로 행복해지자.

카테고리 없음 2024.01.16

윤제림시 모음

가정식 백반 윤제림 아침 됩니다 한밭식당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는, 낯 검은 사내들, 모자를 벗으니 머리에서 김이 난다 구두를 벗으니 발에서 김이 난다 아버지 한 사람이 부엌 쪽에 대고 소리친다, 밥 좀 많이 퍼요. - 시집 [ 그는 걸어서 온다 ] 문학동네, 2008. 지하철에 눈이 내린다 ​ 윤제림 ​ 강을 건너느라 지하철이 지상으로 올라섰을 때 말없이 앉아 있던 아줌마 하나가 동행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한다 눈 온다 옆자리의 노인이 반쯤 감은 눈으로 앉아 있던 손자를 흔들며 손가락 마디 하나가 없는 손으로 차창 밖을 가리킨다 눈 온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서 있던 젊은 남녀가 얼굴을 마주 본다 눈 온다 만화책을 읽고 앉았던 빨간 머리 계집애가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든다 눈 온다 한강에 눈이 내린다 지하철에 ..

카테고리 없음 2024.01.15

김남조시 모음

雪 木 ( 설목) 김남조 나의 마음 속 누구도 모르는 산등성에 한 그루 설목을 가꾸어 왔습니다 나뭇잎 지고 시냇물마저 여위는 가을을 최후의 계절이라 믿었던 어느 그 날, 사랑하노라 사랑하노라던 사람 떠나고 없음이여 미워하면서 나를 미워하면서 내 옆에 남아줌이 더욱 백 배는 고맙고 복되었을 것을 물방울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두터운 철물 같은 고요 속에 나뭇가지 사철 고드름 달고 소스라쳐 위로 설악( 雪 岳 )에 뻗는 백엽보다도 희고 손 시린 이 나무는 역력히 이 나무를 닮고 역력히 이 마음을 닮은 내 사랑의 표지입니다 붉은 날인과 같은 회상입니다 당신이여 불씨 한 줌 머금고 죽어도 좋을 이 외로운 겨울밤 겨울밤 -- 오늘 그리고 내일의 노래 ( 김남조 저자.글 ) 시월 출판 2009년2월28일 나무들ㆍ4..

카테고리 없음 2024.01.15

도시의눈

“도시에 전쟁처럼 눈이 내린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가로등 아래 모여서 눈을 털고 있다. 나는 어디로 가서 내 나이를 털어야 할까? 지나간 봄 화창한 기억의 꽃밭 가득 아직도 무꽃이 흔들리고 있을까? 사방으로 인적 끊어진 꽃밭, 새끼줄 따라 뛰어가며 썩은 꽃잎들끼리 모여 울고 있을까.//우리는 새벽 안개 속에 뜬 철교 위에 서있다. 눈발은 수천 장 흰 손수건을 흔들며 하구로 뛰어가고 너는 말했다. 물이 보여. 얼음장 밑으로 수상한 푸른 빛,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면 은빛으로 반짝이며 떨어지는 그대 소중한 웃음. 안개 속으로 물빛이 되어 새떼가 녹아드는 게 보여? 우리가.”-기형도 ‘도시의 눈-겨울판화 2’

카테고리 없음 2024.01.12

백창우시 모음

그대 오늘은 어느 곳을 서성거리는가 백창우 그대 오늘은 또 어느 곳을 서성거리는가 꾸부정한 모습으로 세상 어느 곳을 기웃거리는가 늘 어디른가 떠날 채비를 하는 그대 그대가 찾는 건 무엇인가 한낮에도 잠이 덜 깬듯 무겁게 걸어가는 그대 뒷모습을 보면 그대는 참 쓸쓸한 사내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들고 다니는 그대의 낡은 가방 안엔 뭐가 들었을까 소주 몇 잔 비운 새벽엔 무척이나 사람을 그리워하는 그대 가끔은 그대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다 그대 눈 속에 펼쳐진 하늘 그대 가슴 속을 흐르는 강물 바람인가, 그대는 이 세상을 지나는 바람인가 - 음유시인 백창우시집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ㆍ둘 도서출판 신어림 1994년 오렴 ​ 백창우 오렴 사는 일에 지쳐 자꾸 세상이 싫어질 때 모든 일 다 제쳐두고 내게..

카테고리 없음 2024.01.10

별이 좋은 것은

별이 좋은 것은 이돈권 별이 좋은 것은 멀리 있기 때문이다 멀리 있어 달려갈 수 없기 때문이다 상처 총총 다 여미고 빛나는 모습만 보여 주기 때문이다 어둠이 누를수록 더욱 찬란해지기 때문이다 수억만 리에서 달려와 벅찬 꿈꾸게 하는 영롱함 때문이다 별이 안타깝도록 좋은 것은 가까이 갈 순 없어도 바라만 봐도 좋은 너를 닮았기 때문이다 - 시집 [ 희망을 사다 ] 천년의시작, 2019. P 65 입춘 이돈권 입춘에 나는 햇살이 되리 겨우내 추운 그대에게 따사로운 입맞춤이 되리 입춘에 나는 강물이 되리 겨울 강가 버들강아지 눈 틔워 졸졸졸 그대 품으로 흘러가오리 오, 나는 입춘에 기쁜 편지가 되리 남녘 설중매 분홍빛 소식 받들고 겨우내 닫혔던 그대 속살에 눈부신 봄의 전령이 되오리 - 시집 [ 희망을 사다 ]..

카테고리 없음 2024.01.08

김용택시 모음

끝이 까맣게 탄 새 풀잎 김용택 봄을 느껴보고 싶고, 봄을 보고 싶습니다. 푸른 눈을 틔우는 나뭇가지 끝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고, 나물을 뜯어보고 싶고, 푹신푹신한 좁은 논두렁길을 천천히 걷고 싶고, 논둑 밭둑에 돋아나는 풀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내 뺨에 부는 감미로운 봄바람을 온 몸으로 느껴보고 싶고, 치마폭을 나부끼며 마을을 벗어난 흙 길을 해 질 때까지 걷고 싶고, 양지 바른 언덕에 앉아 해바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시냇물이 흐르는 강가에 버들강아지 부드러운 솜털을 가만히 만져보고 싶고, 마른풀을 태운 강변, 새까만 재 밑에서 돋아나는 끝이 까맣게 탄 풀잎들과 파란 몸을 보고 싶고, 얕은 강물로 나온 잔고기 떼들의 희고 반짝이는 새 몸을 보고 싶습니다. 이 모든 것들 중에서, 그 모든 ..

카테고리 없음 2024.01.06

25년간 교보생명 '광화문글판'사랑받은 10선 싯귀

[25년 간 교보생명 '광화문 글판' 중 가장 사랑 받은 10선 싯귀] 1. 풀꽃 /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2. 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3. 대추 한 알 / 장석주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 4. 풍경 달다 / 정호승 먼 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5.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6. 약해지지 마 / 시바타 도요 있잖아, 힘들다고 한숨 짓지마. 햇살과 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7. 해는 ..

카테고리 없음 2024.01.06

그대 때문에 따뜻한 겨울

"그대 때문에 따뜻한 겨울" 얼지 않는 겨울이 어디 있으며 겨울을 거치지 않는 봄 또한 없으니 그대와 나의 삶과 사랑이 때로는 겨울처럼 추울지라도 이 모두가 철 따라 꽃을 피우기 위함인 줄 압니다 모두 제자리로 돌려보내고 홀로 얼어붙은 겨울 바람도 울어버린 추위에도 그대는 그대만을 위해 따뜻하지 않았고 그대만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겨울에도 얼지 않는 마음의 샘터에서 오늘도 물을 길어 올리는 기쁨 그대 때문에 나의 겨울이 춥지 않고 얼지 않으니 이 모두가 그대의 한결같은 사랑 때문입니다 찬바람에 떨며 춥기만 한 겨울 스스로 사랑의 촛불이 되어 언 모두를 따뜻이 녹여주는 그대 때문에 나 이미 봄으로 피어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을 그대에게 드립니다 책속의한줄

카테고리 없음 2024.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