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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아침 송수권시

새해 아침 송수권 ​ 새해 아침은 불을 껐다 다시 켜듯이 그렇게 떨리는 가슴으로 오십시오 ​ 답답하고 화나고 두렵고 또 얼마나 허전하고 가난했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지난밤 제야의 종소리에 묻어둔 꿈도 아직 소원을 말해서는 아니 됩니다 ​ 외로웠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억울했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슬펐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 얼마나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습니까? 그 위에 우레와 같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그 위에 침묵과 같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낡은 수첩을 새 수첩으로 갈며 떨리는 손으로 잊어야 할 슬픈 이름을 두 줄로 금긋듯 그렇게 당신은 아픈 추억을 지우십시오 ​ 새해 아침은 찬란한 태양을 왕관처럼 쓰고 끓어오르는 ..

카테고리 없음 2024.01.03

일월의 아침 허형만시

일월의 아침 ... 허형만 세월의 머언 길목을 돌아 한줄기 빛나는 등불을 밝힌 우리의 사랑은 어디쯤 오고 있는가 아직은 햇살도 떨리는 일월의 아침 뜨락의 풀뿌리는 찬 바람에 숨을 죽이고 저 푸른 하늘엔 새 한마리 날지 않는다 살아 갈수록 사람이 그리웁고 사람이 그리울수록 더욱 외로와지는 우리네 겨울의 가슴 나처럼 가난한 자 냉수 한 사발로 목을 축이고 깨끗해진 두 눈으로 신앙같은 무등이나 마주하지만 나보다 가난한 자는 오히려 이 아침 하나님을 만나 보겠구나 오늘은 무등산 허리에 눈빛이 고와 춘설차 새 잎 돋는 소리로 귀가 서러운 일월의 아침 우리의 기인 기다림은 끝나리라 어머니의 젖가슴같은 땅도 풀리고 꽃잎 뜨는 강물도 새로이 흐르리라 우리의 풀잎은 풀잎끼리 서로 볼을 부비리라 아 아 ! 차고도 깨끗한 ..

카테고리 없음 2024.01.02

가장 소중한 사람이 있다는 건

가장 소중한 사람이 있다 가장 소중한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 입니다 나의 빈자리가 당신으로 채워지길 기도하는 것은 "아름다움" 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즐거움" 입니다 라일락의 향기와 같은 당신의 향을 찾는 것은 "그리움" 입니다 마음속 깊이 당신을 그리는 것은 "간절함" 입니다 바라 볼수록 당신이 더 생각나는 것은 "설레임" 입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보다 말하지않아 더 빛나는 것이 "믿음" 입니다 아무런말 하지 않아도 당신과 함께 있고 싶은 것이 "편안함" 입니다 자신보다 당신을 더 이해하고 싶은 것이 "배려" 입니다 차가운 겨울이 와도 춥지 않은 것은 당신의 "따뜻함" 입니다 카나리아 같은 목소리로 당신 이름 부르고 싶은 것이 "보고싶은 마음" 입니다 타인이 아닌 내가 당..

카테고리 없음 2024.01.02

1월 오세영시

◇1월 오 세 영 1월이 색깔이라면 아마도 흰색일 게다 아직 채색되지 않은 신의 캔버스 산도 희고 강물도 희고 꿈꾸는 짐승 같은 내 영혼의 이마도 희고 1월이라면 음악이라면 속삭이는 저음일 게다 아직 트이지 않는 신의 발성법 가지 끝에서 풀잎 끝에서 바람은 설레고 1월이 말씀이라면 어머니의 부드러운 육성일 게다 유년의 꿈길에서 문득 들려오는 그녀의 질책 "아가 일어나거라 벌써 해가 떴단다" 아! 1월은 침묵으로 맞이하는 눈부신 함성

카테고리 없음 2024.01.02

눈에 관한 시모음

폭설 이재무 하느님도 가끔은 어지간히 심심하셔서 장난기 가 발동하시나 보다. 지상에 하얀 도화지 한 장 크게 펼쳐놓으시고서 인간들을 붓 삼아 여기저 기 괴발개발 낙서를 갈기시는 걸 보면. 그리고 는 당신이 보시기에도 그 낙서들 너무 심란하고 어지러우면 한 사흘 뒤 햇살이나 비 지우개로 박박 문질러 말끔하게 지우시는 걸 보면. - 슬픔은 어깨로 운다 (천년의시작, 2017) 유빙들 이재무 어긋난 사랑 엇도는 관계를 저렇게도 아프고 무력하게 말하는 것들이 있다 한파가 맺어준 단단한 결속을 저렇게도 한순간에 허무는 것들이 있다 둥둥 물살에 휩쓸려 떠다니면서 한 몸으로 살았던 어제를 잊고 서로를 불신하며 밀어내고 있는 것들이 있다 쩌렁쩌렁 겨울 천하를 호령하던 이력 지우고 흐르는 세월에 재빠르게 순응하는 것들이..

카테고리 없음 2023.12.31

정호승시 모음

별들은 따뜻하다 정호승 하늘에는 눈이 있다 두려워할 것은 없다 캄캄한 겨울 눈 내린 보리밭길을 걸어가다가 새벽이 지나지 않고 밤이 올 때 내 가난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나에게 진리의 때는 이미 늦었으나 내가 용서라고 부르던 것들은 모든 거짓이었으나 북풍이 지나간 새벽거리를 걸으며 새벽이 지나지 않고 또 밤이 올 때 내 죽음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별들은 따뜻하다』. 창작과비평사. 1990 숯이 되라 정호승 상처 많은 나무의 가지가 되지 말고 새들이 날아와 앉는 나무의 심장이 되라 내가 끝끝내 배반의 나무를 불태울지라도 과거를 선택한 분노의 불이 되지 말고 다 타고 남은 현재의 고요한 숯이 되라 숯은 밤하늘 별들이 새들과 함께 나무의 가슴에 잠시 앉았다 간 작은 발자국 밤새도..

카테고리 없음 2023.12.31

송년,연말에 대한시 모음

연말年末 ㅡ유안진 언어는 떠나가고 휘파람 한 소절이 찾아와 준 입술이여 그 써늘한 깊이를 깊이 알아 더 춥지 춥고 쓸쓸한 끄트머리는 바닥없이 깊어질 뿐이지 생각 없이 살면 남들이 괴롭고 생각 깊게 살면 제자신만 괴롭지 깊어지지 말자, 깊어져 일상이 침몰되고 무의미 무책임 텅 빈 자유와 망각이 될 뿐 가슴 옥죄는 기다림을 기다리게 하지 슬픔도 깊어지면 황홀도 되지, 그래서 더 슬프다 오래전에 속속들이 알아버렸구나 인생이란 것에 다시 발 디밀어 다리뻗기는 글러먹었으니 분수없지 말자, 끝이 곧 처음이라는 그럼에도 불구함이여.? 송년에 즈음하면 유안진 ​ 송년에 즈음하면 도리 없이 인생이 느껴질 뿐입니다 지나온 일 년이 한 생애나 같아지고 울고 웃던 모두가 인생! 한마디로 느낌표일 뿐입니다 송년에 즈음하면 자꾸..

카테고리 없음 2023.12.31

김해자 시 모음

무화과(無花果)는 없다 김해자 ​ ​ 장대비 속 후줄근한 시위는 끝나고 누군가는 돌아오지 않고 피어나지 못한 채 시들어가는 부용산, 노래 같은 떨거지끼리 미라가 되어버린 생강이며 무화과 안주삼아 술을 마시다 문득 떠오른 남녘 땅 무화과 수 어릴 적 마당가 돌담에 단단히 서 있었지 크낙한 잎을 따면 하얀 수액 방울방울 흐르고 퍼렇다 못해 어두운 그늘 깊던, 산수유며 해당화 다 피고 지도록 벌 나비도 찾지 않아 늘 외로워 보이던, 꽃 없는 과실이 어디 있으리 조금 늦게 피는지 몰라 수술 그득 채우느라 꽃잎이며 꽃받침 밀어 올릴 틈이 없는지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지도 몰라 꽉 찬 살이 터지며 꽃잎을 터트릴 때까지 과육의 껍질이 꽃을 숨기고 있었던 거라구 ​ 보아, 십자로 벌어진 과육이 터트린 네 잎의 꽃 열린..

카테고리 없음 2023.12.31

박경리시 모음

세상 박경리 ​ 아이들이 간다 쫑알쫑알 지껄이며 간다 짧은 머리 다풀거리며 간다 일제히 돌아본다 아이들 얼굴은 모두 노인이었다 노인들이 간다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간다 백발, 민들레 씨앗 깃털 같은 머리칼 지팡이 짚고 돌아본다 노인들 눈빛은 갓난아기였다 [우리들의 시간] 마로니에북스,2012. 62쪽 대추와 꿀벌 박경리 대추를 줍다가 머리 대추에 처박고 죽은 꿀벌 한 마리 보았다 단맛에 끌려 파고들다 질식을 했을까 삶과 죽음의 여실如實한 한 자리 손바닥에 올려놓은 대추 한 알 꿀벌 반 대추 반 눈이 시리도록 푸른 가을 하늘 - 시집 [우리들의 시간 ] 마로니에북스, 2012. P 24 불행 박경리 사람들이 가고 나면 언제나 신열이 난다 도끼로 장작 패듯 머리통은 빠개지고 갈라진다 사무치게 사람이 그리운데..

카테고리 없음 2023.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