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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창우시 모음

려니하하 2024. 1. 10. 17:44

그대 오늘은 어느 곳을 서성거리는가



                                                           백창우



그대 오늘은 또 어느 곳을 서성거리는가
꾸부정한 모습으로 세상 어느 곳을 기웃거리는가
늘 어디른가 떠날 채비를 하는 그대
그대가 찾는 건 무엇인가
한낮에도 잠이 덜 깬듯
무겁게 걸어가는 그대 뒷모습을 보면
그대는 참 쓸쓸한 사내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들고 다니는 그대의 낡은 가방 안엔
뭐가 들었을까
소주 몇 잔 비운 새벽엔 무척이나
사람을 그리워하는 그대
가끔은 그대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다
그대 눈 속에 펼쳐진 하늘
그대 가슴 속을 흐르는 강물
바람인가, 그대는
이 세상을 지나는
바람인가


-  음유시인 백창우시집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ㆍ둘
    도서출판  신어림 1994년

오렴
 ​
            백창우


오렴
사는 일에 지쳐 자꾸
세상이 싫어질 때
모든 일 다 제쳐두고
내게 오렴

눈물이 많아지고
가슴이 추워질 때
그저 빈 몸으로 아무 때나
내게 오렴

​네가 자유롭게 꿈꿀 수 있는
방 하나 마련해 놓고
널 위해 만든 노래들을 들려줄게

​네가 일어날 때 아침이 시작되고
네가 누울 때 밤이 시작되는 이곳에서
너를 찾으렴

망가져 가는 너의 꿈을
다시 빛나게 하렴

내 고운 사람에게


                        백창우





그대 깊은 눈 속, 슬픈 꿈의 바다에

착한 새 한 마리로 살고 싶어라​

햇살의 눈부심으로

별빛의 찬란함으로

그대의 푸른 물결에 부서지고 싶어라



높이 솟구쳐

그대를 안으리라​

그대가 가진 서러움도​

그대가 가진 아픔도

나의 날개로 감싸리라

그대, 내 사람아



그대 더운 사랑은 내 가장 소중한 노래​

추운 나날을 지펴주는 불길이구나

길고 긴 어둠을 이겨내며

크나큰 바람을 이겨내며

이 삶 다할 때까지 그댈 지키고 싶어라



- 시집 [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 신어림, 1994.  P 86

소주 한잔 했다고 하는 얘기가 아닐세


                          백창우




​울지 말게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날마다 어둠 아래 누워 뒤척이다, 아침이 오면

개똥 같은 희망 하나 가슴에 품고

다시 문을 나서지

바람이 차다고, 고단한 잠에서 아직 깨지 않았다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사람이 있을까

산다는 건, 만만치 않은 거라네

아차 하는 사이에 몸도 마음도 망가지기 십상이지

화투판 끗발처럼, 어쩌다 좋은 날도 있긴 하겠지만

그거야 그때 뿐이지

어느 날 큰 비가 올지, 그 비에

뭐가 무너지고 뭐가 떠내려갈지 누가 알겠나

그래도 세상은 꿈꾸는 이들의 것이지

개똥 같은 희망이라도 하나 품고 사는 것 행복한 거야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고 사는 삶은 얼마나 불쌍한가

자, 한잔 들게나

되는 게 없다고, 이놈의 세상

되는 게 좆도 없다고

술에 코 박고 우는 친구야



​- 시집『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신어림,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