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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기형도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기형도그는 어디로 갔을가너희 흘러가버린 기쁨이여한때 내 육체를 사용했던 이별들이여찾지 말라,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이제 해가 지고 길 위의 기억은 흐려졌으니공중엔 희고 둥그런 자국만 뚜렷하다물들은 소리없이 흐르다 굳고어디선가 굶주린 구름들은 몰려왔다나무들은 그리고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냈다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돌아갈 수조차 없이이제는 너무 멀리 떠내려온 이 길구름들은 길을 터주지 않으면 곧 사라진다눈을 감아도 보인다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나를 찾지 말라‥‥‥ 무책임한 탄식들이여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카테고리 없음 2024.11.30

11월의 마지막에는 이병률시

● '11월의 마지막에는'/ 이병률국을 끓여야겠다 싶을 때 국을 끓인다국으로 삶을 조금 적셔놓아야겠다 싶을 때도국 속에 첨벙 하고 빠뜨릴 것이 있을 때도살아야겠을 때 국을 끓인다세상의 막내가 될 때까지 국을 끓인다누군가에게 목을 졸리지 않은 사람은그 국을 마실 수 없으며누군가에게 미행당하지 않은 사람은그 국에 밥을 말 수 없게세상에 없는 맛으로 끓인다뜨겁지 않은 것을 서늘히 옹호해야겠는 날에뭐라도 끓여야겠다 싶을 때 물을 받는다

카테고리 없음 2024.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