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을 위하여 문정희 봄부터 가을까지 내가 한 일은 그동안 쓴 시들을 고치고 주무르다가 망가뜨린 일이다 시는 고칠수록 시로부터 도망쳤다 등 푸른 물고기떼 배 뒤집고 죽어 가듯이 생명이 빠져나갔다 공지 빠진 새처럼 앙상한 가지에 앉아 허공을 보고 나는 조금 울었다 벌목꾼처럼 제법 나이테 굵은 침엽수 활엽수 다듬고 쪼개다가 불쏘시개를 만들고 만 것이다 지난봄부터 가을까지 헛것과 헛짓에 목매단 것이다 나는 울다가 눈을 떴다 그래 이대로 절뚝이며 살아라 나 또한 헛짓하며 즐거웠다 나는 시들을 자유로이 놓아주었다 부서진 욕망, 미완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 불온한 생명이여 어쩌다 내가 기념비적인 기둥 하나 세웠다 해도 얼마 후면 그 기둥 아래 동네 개가 오줌이나 싸놓고 지나갈 것을* * 헝가리 소설가 산도르 마라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