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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시 모음

지루하지 않은 풍경 최영미 어디론가 갈곳이 있어 달리는 바퀴들이 부러웠다 . 앞만 보고 질주하다 길모퉁이에서 부드럽게 꼬부라지는 빨갛고 노란 불빛들이 부러웠다. 비에 젖은 8차선 대로는 귀가하는 차들이 끊이지 않고 신호등을 읽었다면 멈출 때를 알았다면 나도 당신들의 행렬에 합류했을지도....... 내게 들어왔던 , 내가 버렸던 삶의 여러 패들은 멀리서 보니 나름대로 아름다웠다. 하얀 가로등 밑의 물웅덩이에 빗방울이 떨어져 보석 같은 빛을 탁탁 튀기며 지루하지 않은 풍경을 만들고 반짝이는 한 뼘의 추상화에 빠져 8월의 대한민국이 견딜 만한데 이렇게 살면서 , 불의 계절을 살아남아서 다행이라고 비 오는 밤을 젖지 않고 감상하는 방을 주신 신에 감사하며, 독한 연기를 뿜었던 입 안을 헹구고 내 밑에서 달리는 ..

카테고리 없음 2024.08.08

허형만시 모음

당신에게 묻는다 허형만 완벽한 사람을 바라지 말라 어차피 애초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다 시도 마찬가지여서 완벽한 시를 바라지 말라 태초에 말씀이 있어 그 말씀이 시로 몸을 바꾸었을 뿐 애초부터 완벽한 시는 존재하지 않았다 완벽한 시를 갈망하고 있는가 틈새 없는 시는 감동이 없다 시를 쓴다는 일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만큼 힘들다는 사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묻는다 평생 잊지 못할 사람 한 사람쯤 있는지 생의 마지막에 들려줄 눈물겨운 시 한 편 쯤 있는지 허형만 시집 『만났다』, 황금알 그늘이라는 말 허형만 그늘이라는 말 참 듣기 좋다 그 깊고 아늑함 속에 들은 귀 천년 내려놓고 푸른 바람으로나 그대 위해 머물고 싶은 그늘이라는 말 참 듣기 좋다 운주사에서 허형만 운주사에 오면 눕고 싶다 저 와불처럼 나도 누워..

카테고리 없음 2024.08.08

사랑했다,사랑한다

사랑했다, 사랑한다 사랑도 아팠지만 이별은 더 아팠다 떠나가는 네 뒷모습은 바람에 떨어지는 붉은 가을 나뭇잎의 실루엣처럼 나를 슬프고 아프게 하였다 그 어떤 사랑이든 사랑은 아름답고 고귀한 것인데 떠난 사랑의 얼룩은 오래남고 상처는 왜 이리 깊은 것인지 그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 널 잊고 지울 것인지 눈물 속에 아른거리는 회색빛 너의 실루엣 오래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아 정녕 가야 한다면 가는 것이 너를 편안하게 한다면 웃으며 보내줄게 사랑하니까 보내야 하는 거겠지 그리움의 이파리 가지마다 파릇하게 피어오르더라도 내 가슴에 하나 둘 묻으면 되지 이제는 꽃비 내리듯 흘러내리는 낙엽처럼 너라는 단단한 줄기에서 떨어져 나갈게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이 될게 그래도 네가 미칠 만큼 그리우면 붉게 물든 나뭇잎에 흘림체로..

카테고리 없음 2024.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