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쯤은 / 김부조 오늘 하루쯤은 일상을 밀어낸 느슨한 생각과 헐렁한 옷차림이 지어 낸 표정으로 베란다 창을 다투어 뚫고 스며드는 햇살의 길이로만 시간을 가늠하며 느긋한 아침의 시작으로 어긋난 식탁의 무딘 질서가 하루 두 끼의 식사로도 너끈히 바로 설 수 있음을 기꺼이 인정하고 누군가로부터도 적당히 멀어져 그 사람의 버거운 기억을 한 꺼풀이나마 벗겨 주고 하루쯤은 빛바랜 문패가 떨어져 나가 그 누구도 나를 찾을 수 없게 되는 해묵은 주소록이 열리지 않아 내가 그 누구도 찾아 나설 수 없게 되는 바로 그런 날 허공처럼 말갛고 허허롭게 머물다 고요에 지쳐 쓰러질 바로 오늘 하루쯤은 『곡선에 물들다』 책속의 한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