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꽃을 따다
손택수
주말농장 밭고랑에 서 있던 형이 감자꽃을 딴다
철문 형, 꽃 이쁜데 왜 따우
내 묻는 말에
이놈아 사람이나 감자나 너무 오래 꽃을 피우면
알이 튼실하지 않은 법이여
꽃에 신경 쓰느라 감자알이 굵어지지 않는단 말이다
평소에 사형으로 모시는 형의 말씀을 따라 나도 감자꽃을 딴다
꽃 핀 마음 뚜욱 뚝 끊어낸다
꽃시절 한창일 나이에 일찍 어미가 된 내 어머니도
눈 질끈 감고 아까운 꽃 다 꺾어냈으리라
조카애가 생기고 나선 누이도
화장품값 옷값을 말없이 줄여갔으리라
토실토실 잘 익은 딸애를 등에 업고
형이 감자꽃을 딴다
딸이 생기고 나선 그 좋은 담배도 끊고
술도 잘 마시질 않는 다는 독종
꽃 핀 마음 뚜욱 뚝 분지르며
한 소쿠리 알감자 품에 안을 날들을 기다린다
시집『나무의 수사학』(실천문학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