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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금기 사항

려니하하 2024. 4. 10. 09:28


봄의  금기  사항  
                                                                             신달자



  봄에는  사랑을  고백하지  마라

  그저  마음  깊은  그  사람과

  나란히  봄들을  바라보아라




  멀리는  산  벚꽃들  은근히

  꿈꾸듯  졸음에서  깨어나고

  들녘마다  풀꽃들  소근소근  속삭이며  피어나며




  하늘  땅  햇살  바람이

  서로서로  손잡고  도는  봄들에  두  발  내리면

  어느새  사랑은  고백하지  않아도

  꽃  향에  녹아

  사랑은  그의  가슴속으로  스며들리라




  사랑하면  봄보다  먼저  온몸에  꽃을  피워내면서

  서로  끌어안지  않고는  못  배기는

  꽃술로  얽히리니

  봄에는  사랑을  고백하지  마라




  무겁게  말문을  닫고

  영혼  깊어지는  그  사람과  나란히  서서

  출렁이는  생명의  출항

  파도치는  봄의  들판을

  고요히  바라보기만  하라



-  시집  [오래 말하는 사이]  (2014)


  ¤   시인ㆍ前 대학 교수          신달자


  --  1943년,  경남  거창  출생
  --  천주교 세례명 ㆍ엘리샤벳
  --  숙명여대  국어국문학  학사ㆍ동대학원  석/박사
  --  1964년,  [여상]에  詩  <환상의 밤> 당선 / 등단
  --  1969년,  박목월 추천으로  詩  <발>,  <처음 목소리>  등
      [현대문학]에 게재하며  본격적인  문단 활동 시작
  



봄바람이 불어 온다

물가에도
뚝배기 같은 집의 안뜰에도
죽은 무덤에도 봄풀 봄잎이 온다.

걸음마를 막 익히는
돌 무렵 꽃망울 아이처럼
천천히 천천히 우리에게로.

봄풀 봄잎은
수식이 없어도 생기가 돈다.

당신은 봄풀 봄잎의 말을
뒷무릎 접고 앉아 들어보라.

사랑은 그처럼 낮고
여린 빛깔을 빚어 보이는 것.

남녘의 봄들로 손잡고 가
사랑의  고백을 바라보아라


문태준 | 시인

신달자의 시는 평이한 어법으로
일상사의 이야기를 하거나
대상을 관찰하고 있지만,
결코 평이한 시가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다.


평범한 사람들은 결코
볼 수 없는 삶의 본질에 대한
순간적 깨달음을 시인 특유의
상상력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그냥 느끼는 것이다.


굳이 자신의 내부에 있는
모든 것을 풀어놓지 않아도
봄에는 이미 주변의 풍광들이 겨우내
꽁꽁 묶어두었던 속내를 풀어내며
달콤함을 속삭이고 있기에 우리는
눈빛으로만 사랑을 속삭여도 된다.


‘무겁게 말문을 닫고/
  영혼 깊어지는 그 사람과 나란히 서서/
  출렁이는 생명의 출항/
  파도치는 봄의 들판을/
  고요히 바라보기만 하라‘


올 봄에는 이러한 사랑을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