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박두진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앳되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아버지 박두진이 던진 화두…
아들 박영하는 그림으로 그렸다
부친이 제시한 詩語 ‘내일의 너’
아들은 수십년째 추상화로 표현
‘의금상경’展 학고재서
박영하 ‘내일의 너’(146x97㎝) 일부. /학고재
‘해야 솟아라…’로 유명한 시인 박두진(1916~1998)은 아들에게 ‘내일의 너’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후 화가 박영하(69)씨는 수십년간 이 주제로 추상화를 그려왔다. “구체적인 의미를 설명해주지는 않으셨다”면서도 “예술가는 일반인보다 한발 앞서야 한다는 점에서 내일에 조금이라도 가까운 존재로서 회화의 본질을 고민하기 위해 이 화두를 그림으로 옮긴다”고 말했다.
꾸준히 ‘내일의 너’를 제목으로 한 그림을 발표해오고 있다. 토담을 연상케 하는 흙빛 바탕에 이지러진 형상…. 내일을 알 수 없듯 해석은 끝내 미지(未知)로 남는다. “주장이 확실한 그림이 아니다. 그래서 모든 연작에 이 제목이 들어맞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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